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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신고와 응급신고 사이에 선 구급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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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신고와 응급신고 사이에 선 구급차
  • 경도신문
  • 승인 2018.04.0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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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동 규

최근 “어지러움이 심해 도와 달라”는 전화가 119에 걸려왔다.

이 여성은 출동한 구급대원에게 “신촌에 있는 병원에 입원 예약이 돼있으니 데려다 달라”고 했다.

증상을 고려해 인근 병원의 진료를 권유했으나, 이 여성은 “그 병원으로 꼭 가야 한다, 안 되겠다면 버스정류장 앞에라도 데려다 달라”며 고집했다.

버스를 탈 수 있을 정도의 멀쩡한 상태에서 신고를 했다는 점, 그리고 병원 갈 짐을 미리 준비해 놓았다는 점까지 관찰할 수 있었던 안타까운 출동경험이었다.

위급한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멀리 있는 병원으로 가달라고 하는 시민들의 신고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구급대원들은 이런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타당한 이유 없이 거리가 먼 병원을 고집하는 것도 구급 방해활동에 포함된다.

하지만 구급대원들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민원이 부담스럽다 보니 납득이 되지 않는 요구라고 해도 들어주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 뿐만 아니라 한번은 “눈이 안보이고 머리가 너무 아프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을 한 적이 있었다.

목적지는 해장국집... 신고자분을 만났고 얼큰히 취해 계신 여성분이었다.

지금 머리가 너무 아프고 앞이 잘 안 보이므로 집으로 데려다 달라는 것이었다.

명백한 허위신고였다.

우리는 응급환자분들을 신속히 병원 응급실로 이송해드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충분한 설명을 했지만 막무가내였고 결국 집으로 모셔다드린 안타까운 경험이 있다.

구급차는 원칙상 응급환자를 신속히 응급처치해 인근 응급실로 이송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원칙과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응급치료가 아닌 진료를 위한 구급차 이용은 잘못된 행동이다.

구급차가 관내지역이 아닌 곳으로 운행을 할 경우 ‘구급차 공백’이 발생한다.

현재 전국 1029개 안전센터에서 운행 중인 구급차는 총 1384대이다.

이는 각 센터당 약 1.34대 꼴이다.

관내를 비운 구급차로 인해 또 다른 응급환자가 발생 시 다른 지역의 구급차를 보내야 한다.

‘5분내 출동’이라는 원칙이 지켜지기가 어렵다.

정작 1분 1초가 급한 진짜 응급환자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아직 많이 계신다.

이에 비응급 출동을 줄이기 위해 인천서부소방서는 구급차량 안내카드를 제작해 비응급환자 이송 거절 사유, 응급실 이송원칙, 허위신고 등으로 진료를 받지 않은 자에 대한 과태료 부과내용 등을 구급차량과 관내 병원 협조 하에 홍보하고 있다.

홍보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구급차 출동 거부권을 실행할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그전에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응급환자 발생 시 대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신고하기 전, 꼭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인천서부소방서 119구급대 소방사 이 동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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