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호우와 북한 황강댐 방류로 임진강 수위가 급격히 상승하던 지난 21일 연천군 중면의 행정 책임자인 오흥산 면장은 주민들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초소를 찾았다.
침수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확인하는 것은 지방행정 책임자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상부 허가가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오 면장은 여러 차례 주민 안전 확인을 위한 긴급 출입을 요청했지만, 초소는 규정을 이유로 통과를 허용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주민의 안전을 직접 확인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는 사실은 많은 군민들에게 허탈함과 분노를 안겨주고 있다.
물론 군의 경계 임무는 국가안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군사시설 보호와 민통선 출입 통제 역시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안보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있다.
국민이 재난으로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조차 규정만을 앞세우는 대응이 과연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와 부합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당시 상황은 단순한 민원이나 개인적인 출입 요청이 아니었다.
집중호우로 인한 임진강의 범람 우려가 이어지는 가운데 행정기관 책임자가 주민 피해를 확인하고 긴급 대응을 위해 현장 접근을 요청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허가할 수 없다”는 한마디로 모든 판단을 대신했다면, 그것은 재난 대응 체계의 허점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일이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집중호우와 자연재난은 이제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일상이 되고 있다.
재난은 규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골든타임은 보고 절차가 끝날 때까지 멈춰 있지 않는다.
군과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을 보호한다는 같은 목적을 가진 국가기관이다.
그런데도 재난 현장에서 서로 협력하지 못하고 절차와 권한만 앞세운다면 그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이번 논란은 특정 초소나 현장 근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긴급 재난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작동하지 못하는 제도와 지휘 체계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현장 근무자가 상부 지시를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면 재난 상황에서 신속한 판단과 협조가 가능하도록 지휘 체계를 설계하는 것 또한 군의 책임이다.
군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정작 국민이 위험에 처한 순간, 규정이라는 이름 뒤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이번 일을 계기로 군과 지방자치단체는 재난 발생 시 긴급 출입 절차와 협조 체계를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
주민의 생명보다 우선하는 규정은 없다.
국가안보도 결국 국민이 살아 있어야 의미가 있다.
재난은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때도 국민은 “출입이 불가합니다”라는 군 관계자의 답을 들어야 하는가. 이번 논란에 대한 분명한 점검과 개선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군을 향한 국민의 불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