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4-04-25 21:39 (목)
국립한국문학관과 은평
상태바
국립한국문학관과 은평
  • 경도신문
  • 승인 2016.05.08 18: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즘 전국에 있는 10여개 시군이 국립한국문학관을 위치하기 위한 물밑 전쟁이 뜨겁다.

지난 해 도종환 의원 발의로 문학진흥법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시작된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사업은 문학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수집해 보존하고,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며 각종 전시를 할 수 있는 기관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은평구 역시 이미 조성된 한옥마을과 연계해 기자와 기자출신 문인들이 살던 기자촌에 부지를 제공해 고전에서 근대문학까지 아우르는 테마파크를 조성하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다.

국립한국문학관으로 제공하려는 기자촌 부지의 주변 740,000m²은 이미 지난해 4월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북한산韓문화특구’로 지정된 바 있다.

은평구는 이광수, 채만식, 정지용, 계용묵, 이육사, 주요한, 심훈, 노천명 등 근대문학의 1세대들이 기거하며 활동하던 지역이다. 그리고 현재에도 최인훈, 이호철, 주원규, 김지연, 지연희, 오경자(은평문인협회장) 등 걸출한 문인들이 은평에 연고를 두고 활동하고 있다.

게다가 윤동주, 김현승 시인을 비롯해 황순원, 김동인, 주요섭 등을 배출한 숭실학교가 평양으로부터 은평구 신사동에 이전돼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현재 은평구에 위치한 역사한옥박물관에서는 4월 19일부터 6월 19일까지 두 달을 일정으로 ‘한국문학 속의 은평’ 이란 주제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 행사에는 문인 130여명의 작품 초간본 700여권이 전시되고 있는가 하면, 녹번동에 살았던 정지용의 ‘정지용 시집’(1936), ‘백록담’(1946), ‘지용시선’(1946), ‘문학독본’(1948) 등 정지용의 저서뿐만 아니라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김동인 시인의 ‘발가락이 닮았다’(1948) 등 은평과 연을 맺은 작가들의 희귀 초간본 14종도 국내에서 처음으로 동시공개 돼 눈길을 끈다.

게다가 은평구는 최근 정지용이 살던 초당터를 발굴해 표지판을 설치하고 국립한국문학관 유치기원 시낭송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정지용은 이화여대 교수직과 경향신문사 주간직은 물론, 기타의 공직에서 물러나 녹번리(현재 은평구 녹번동)의 초당에서 은거하다가 6·25 때 납북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당시 정지용은 시내에서 택시를 타고 들어오면서 “여보! 운전수 양반 / 여기다 내버리고 가면 / 어떡하오! / 녹번리까지만 / 날 데려다주오”(이하 생략)으로 된 ‘녹번리’ 라는 시를 짓기도 했다. 판문점을 기점으로 평양, 신의주로 이어지는 1번국도의 중심에 있는 녹번동에는 양천리라는 표지석이 하나 서 있다.

이는 이곳으로부터 양쪽이 천리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녹번동으로부터 부산이 천리이며, 신의주까지가 천리, 그리고 신의주로부터 회령까지가 천리인 셈이다.

말하자면 지도상 우리나라의 중심이 되는 곳이 은평구이기도 하다. 

1980면대 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은평에는 은평클럽이라는 문인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이 모임이 현재로 이어져 은평문인협회를 이루고 있다.

당시 은평클럽에는 성찬경, 박성룡, 김시철, 황명, 김종해, 허영자, 이근배, 김지향, 정벽봉 시인과 박연희, 서기원, 구혜영, 최미나, 박기원, 박용숙, 김지연, 염재만, 이호철 소설가, 그리고 이선영, 정규웅 평론가 등 문단의 주축을 이루고 있던 문인들이 참여했다.

당시 은평에 살고 있던 권오운, 신달자, 김종원, 김병익 같은 문인들도 자주 참석했지만 90년대 신도시 개발의 영향으로 분당이나 일산 등지로 이주해 살면서 사실상 모임이 해체될 위기를 느끼자 김지연 소설가(한국소설가협회장)가 초대 회장에, 그리고 지연희 수필가(한국수필가협회장)가 사무국장을 맡아 은평문인협회를 창단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은평구는 문인마을, 언론기념관 등을 조성한 뒤 국립한국문학관과 묶어 ‘문학테마파크’를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기존의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셋이서문학관, 한옥마을, 진관사 등 ‘한(韓) 문화체험특구’에다 국립한국문학관까지 더해질 경우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아무튼 문화관광부는 어떤 정치적 목적도 배제한 채 국립한국문학관을 어떤 고장에 건립해야 가장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관람하고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인가를 잘 판단해주기 바란다.

<고려대 평생교육원 교수 김 순 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