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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들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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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들의 힘
  • 경도신문
  • 승인 2016.06.19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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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이면 나는 헬스장에 간다.

10년 넘게 열심히 다녔더니 근육이 단단해지고 활력이 넘쳐 어지간히 일을 해도 힘이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생활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것이 큰 효과다.

두어 시간 운동을 하고 오전 9시를 전후해서 헬스장을 나오면, 그날 팔아야 할 야쿠르트를 받아서 각자의 수레에 정리를 마친 아주머니들이 엎어놓은 야쿠르트 상자를 밥상 삼아 삼삼오오 아침을 먹는다.

날씨가 차갑거나 비가 올 때면 길에서 밥을 먹는 것이 서럽기도 하련만 아주머니들은 서로의 반찬을 나눠먹으며 웃음꽃을 피운다.

아주머니들의 얼굴을 곁눈질로 살펴보니 대략 35세에서 50세 정도의 나이로 보인다.

그런다면 모두 아이들을 기르고 있는 어머니들 아닌가? 남편의 출근과 아이들의 등교를 돕고 부랴부랴 야쿠르트 가게로 출근을 하려니 식구들과 함께 조반 먹을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마치 밀림의 사자들이 사냥해온 짐승을 뜯어먹는 것처럼 보인다.

삶이란 사냥과 같은 것이다.

도시의 생활에서 조금만 나약하고 나태했다가는 온전한 가정을 지키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녀들처럼 전투적으로 생활에 임해야 겨우 아이들 학원비 대고 휴대폰이니 인터넷 요금이니 하는 것들을 틀어막을 수 있는 상황이니 그녀들을 지켜보는 입맛이 씁쓰레하다.

푼수 같지만 이쯤해서 우리 집 이야기 좀 해야 할 것 같다. 간호사로 일하는 아내는 주야간 근무를 번갈아 한다.

아내의 불규칙한 근무시간 때문에 자연스레 아이들의 밥 당번을 맡게 된지 수년이 흘렀다.

아내에 비해 비교적 출근시간이 자유로운 내가 당연히 밥 챙기고 짓는 일을 맡아야 하지만, 사실 그래서보다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에 자청한 일이다.

이젠 나만 보면 아이들 입에서 의례히 ‘아빠 밥줘~’가 튀어나온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살가워 고맙기도 하지만 아내의 몫을 빼앗은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두 부부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살림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집이나 저 야쿠르트 아주머니들의 집이나 마찬가지라고 본다.

버는 것에 비해 물가가 너무 비싸고, 게다가 교육비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통신비를 비롯해 각종 세금이 가계부를 압박하니 밤낮없이 일하고, 길에서 아침을 먹지 않고서는 파산신고를 해야 할 지경이다.

1980~1990년대 서울의 2층과 지층은 거의가 다 봉제공장이거나 전자제품 조립공장들이었다.

아낙들은 그곳에 다니거나 그곳에서 인형의 눈도 박고 구슬도 끼우며 납땜을 하는 등 부업을 가져다가 아이들을 길렀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공장이 거의 중국으로 이전돼 가고 부업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니 저렇게 야쿠르트를 배달하거나 간병인 등을 다니지 않으면 노래방 도우미나 식당에 설거지를 하러 가야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정부는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가내수공업을 모두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빼앗긴 시점에서 우리 아줌마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한정돼 있는 실정이다.

부업이 늘어나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일할 수 있는 일감이 넘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여자는 나약하고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우리들의 어머니들도 그랬다.

우리들이 학교에 가기 전에 벌써 김치뿐인 반찬에 도시락을 싸서 논밭에 나가셨고, 어두워져야 주린 배를 안고 돌아와 수제비를 떠 넣으시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깡보리밥을 싸가지고 밭으로 가서 하루 종일 풀과 씨름을 하려니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거기에 지금처럼 마음대로 벗고 씻을 공간도 없었으니 얼마나 열악한 환경이었는가?

길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밥을 먹는 여자들!

그들에게는 이미 체면도 부끄러움도 없다. 오직 자식들 가르치고 가정을 지키려는 일념뿐이다.

야쿠르트 한 개라도 더 팔기 위해 하루 종일 다리품을 팔아야 하는 그녀들에게 밥은 전쟁터의 탄약 같은 것이리라.

그렇게 열심히 사는 아줌마들이 있기에 지금의 이 사회가 무너지지 않고 견디는 것이 아닌가?

동정보다는 기립박수라도 치고 싶다.

내가 정치지도자라면 대한민국의 어머니들 모두에게 일괄 감사패와 격려금을 드리고 싶다.

<고려대 평생교육원 교수 김 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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