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2024-04-29 02:57 (월)
목소리 큰 사회, 이제 그만
상태바
목소리 큰 사회, 이제 그만
  • 경도신문
  • 승인 2015.11.29 19: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퇴근길에 집으로 들어가다가 골목에서 접촉사고가 났다.

골목에서 내가 들어가는데 조금 참았다 나와도 되련만 무턱대고 주차장에서 차가 나온다.

비킬 데가 마땅치 않아 한쪽 가게 앞으로 차를 비키니 여러 명이 한참을 올라타며 인사를 나눈다. “잘 가, 또 와! 응응, 연락해…….” 사설이 길다.

아마도 집에서 친목계를 마치고 돌아가는 모양이다. 5분가량 그들의 작별인사를 봐주면서 기다리려니 조금 화가 오른다. 술 잡수신 양반은 옆에 타고 술 안 잡수신 여자 분이 차에 올라 운전대를 잡았다.

내가 정차한 사이를 빠져나가는데 내 차의 뒷 범퍼를 긁고 지나간다.

내 차가 흔들린다.

경적을 울리며 “이거 봐요, 차가 끼었잖아요. 왜 자꾸 진행하는 거예요?” 소리를 지르니 옆에 앉은 술 잡수신 양반이 “오라이. 오라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가라며 여자운전자를 재촉한다.

내가 내려서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차가 끼어서 흔들리는데 왜 자꾸만 가라는 거예요?”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내려서 나보고 술 먹었느냐며 시비다.

내가 음주운전을 했다는 거다. 기가 막히는 일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나는 화가 나서 경찰을 부를 테니 ‘차를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차에서 세 명이 내려서 나한테 중구난방으로 쏘아붙인다.

운전했던 여자는 겁이 나는 모양인지 가만히 운전대에 앉아있는데 셋은 하룻강아지를 몰아붙이는 호랑이들 같다. 욕설이 오갔다.

계를 치룬 일행인지 한 사람이 나에게 와서 그냥 가게 봐주란다. 나는 사과해야만 봐준다고 했더니 자기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단다.

구경꾼들이 잔뜩 몰려 있고 못 지나가는 차량들의 경적소리가 대단하다.

그러던 중 산후조리원에 근무하는 아내가 야간 출근을 위해 지나가다 이 광경을 목격했다.

나는 아내에게 ‘바쁘니까 어서 출근이나 하라’고 보냈다.

술 취한 사람이 내가 음주운전을 했다고 소리친다. 방법이 없다.

이정도면 경찰을 부를 수밖에. 경찰이 당도했다.

경찰이 도착해 우선 보험회사에 보험을 접수하란다.

보험회사에 접수를 하고, 그 여자도 나도 음주측정기를 불었다.

둘 다 몇 번씩 불어도 술은 안 마신 것으로 나온다.

그러니까 그 남자가 경찰에게 “여자가 운전하고 왔는데 도망을 갔다.”고 거짓말을 한다.
땅을 치고 통곡할 노릇이다.

아내는 운전면허증도 없고 술도 한 방울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근무 나간 아내가 와야 한다고 그 사람은 막무가내로 소리쳤다.

결국 전화를 걸어서 아내를 오라고 했다.

아내는 퇴근하는 사람들과 인수인계하는 과정이라며 걱정을 하더니 곧 택시를 타고 왔다.

경찰이 아내에게 음주측정기를 불라고 했다.

난생처음 음주측정기를 부는 아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운전을 할 줄도 모르고 면허증도 없는 사람에게 음주측정기를 불라니…….

경찰이 이 분은 운전할 줄도 모르고 술도 안 먹는 사람이라고 말하자 다른 사람이 도망갔는데 엉뚱한 사람을 데려왔다고 또 떼를 쓴다.

급기야 경찰도 화가 났다.

“이 양반 안 되겠구먼. 끝도 없이 거짓말을 하고. 당신 파출소로 갑시다.”하면서 나만 보내주려고 한다. 나는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 차는 연식이 오래된 차라서 조금 긁힌 것쯤이야 상관이 없지만 나와 아내까지 의심해서 오게 한 데 대한 감정이 남아있다.

아내는 ‘택시비랑 한 시간 일당을 내놓으라.’고 그 사람에게 요구한다.

나는 아내를 타일러 보내고 결국 그 사람들에게 사과를 받아낸 후 사건을 마무리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동네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의 손님들이었다.

잘못을 인정하는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다. 미안합니다. 한 마디면 용서해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나한테 뒤집어씌우려는 그들에게 나는 결코 당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정의에 관한 문제이니까? 사람들은 교통사고가 나면 무조건 소리부터 지르고 본다.

이웃과의 층간소음문제도, 주차문제도 우선 소리부터 지른다.

‘미안합니다. 제가 처음이라 잘 몰랐네요.’하면 모든 것은 이해가 된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사회, 적반하장이 통하는 사회는 이제 그만두자.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인가?

<고려대 평생교육원 교수 김 순 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