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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상을 받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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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상을 받는다면
  • 경도신문
  • 승인 2015.12.1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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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상(賞)의 계절이다. 갖가지 행사가 몰려있는 12월은 상을 주고받는 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2월 말쯤이 되면 TV에서는 여기저기 틀어도 상을 주고 받는 프로그램만 나온다. 각 방송사마다 상을 주고 받느라 자화자찬이 정말 꼴불견이다.

KBS, MBC, SBS 등 방송 3사 뿐만 아니라 종편방송들까지 가세해 상을 주고받는 일이 무슨 큰 잔치나 되는 양 떠벌인다.

연기대상, 코미디 대상, 기자상, 프로듀서상, 가요대상, 게다가 백상예술대상 등 수많은 상의 잔치가 벌어지지만 사실 문화소비자인 시청자들한테는 빛 좋은 개살구다.
우리들이 왜 그걸 보고 있어야 하는지 짜증이 난다.

일반인들도 그렇다.

내가 상을 받을 위치에 있는지, 상을 받을만한 일을 했는지조차 모르고 무조건 상을 받는다.

상을 주는 단체 또한 그런 큰 상을 줄만한 여력이 있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어떤 단체는 백범기념관을 빌려 ‘자랑스런 한국인대상’ 같은 큰 상을 수백 명에게 주면서 상패 값은 본인 부담이라며 상패장사를 하는 단체도 있다.

또 어떤 단체는 종로에 있는 국일관을 빌려 문학상의 이름을 10여개나 만들어서 상을 주지만 그 단체나 상을 주는 사람이 상을 줄만한 여력이 있는지도 모르는 체 무조건 상만 받으면 좋다좋다 하는 식으로 상을 받는 걸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게다가 용돈이 궁한 노시인들은 줄줄이 가서 돈 십만 원아라도 벌어볼까 하고 앉아서 상을 주는 사람의 편을 들어 상 타는 사람들을 현혹한다.

한 번은 지인이 자랑스런 한국인대상을 받는다고 해서 백범기념관에 가보았다가 짜증나서 죽는 줄 알았다.

무슨 부문, 무슨 부문 하며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상의 이름을 그럴 듯하게 만들어서 상을 주는데 이거야 원, 상을 받는 사람을 생각해서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오자니 그 사람과의 친분 때문에 그 사람과 의리가 상할 것 같고 진퇴양난의 기로에서 참으로 난감했던 생각을 떠올려본다.

또 한 번인 아는 문인이 상을 받는다고 해서 국일관에 가보았더니 그 사람이 세 개의 문학상을 한꺼번에 받는 것을 보고 하도 기가 막혀서 다시는 그 행사에 가지 않겠노라 다짐을 했던 적이 있다.

한 후배가 다음 주에 국회의사당에서 상을 받는다고 나를 보고 와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가야할는지 말아야 할는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사랑하는 후배니까 꽃다발을 하나 사들고 가서 박수를 쳐주어야 할 테지만 ‘무슨 상인데?’ 하고 물으니 그냥 얼버무린다.

상패의 값도 그렇다.

우리가 왜 상패장사들의 주머니를 채워주어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상패를 소개하는 책자를 보면 허름한 것도 10만원을 육박하고 조금 눈에 들어오면 20만원은 주어야 한다.

전혀 비쌀 이유가 없는 크리스털 상패도 10만원은 주어야 조금 좋아 보인다.

그까짓 유리조각 한 덩어리가 왜 그렇게 비싼가? 소비자들은 1년에 한 번 주는 거니까 그냥 넘어가고 있지만 공정거래위원회라든지 소비자단체에서라도 상패가 왜 그렇게 비싸야 하는지를 체크해서 이런 문제를 짚어주었으면 좋겠다.

수상소감을 밝히는데도 참 가지가지다.

자기의 신앙을 남에게까지 자랑하면서 하나님 부처님을 찾는 것은 보통일이고 무슨 감독님, 무슨 국장님 무슨 피디님, 무슨 선배님, 무슨 언니, 무슨 미용실언니까지 줄줄이 20여명을 불러대며 매년 같은 작태를 이어가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부아가 치민다.

언젠가 김포에서 열리는 중봉조헌문학상 시상식장에 간 일이 있다.

당시는 북한이 연평도를 폭격해서 나라가 어수선한 시국이었는데 수상자인 김두안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이 상을 연평도에 있는 개와 고양이와 들쥐와 뱀 등 사람으로 인해 놀란 짐승들에게 바칩니다.”라고 해서 얼마나 감동을 주었는지 지금도 그 말이 생생하다.

나는 수상소감을 통해 “이 상을 수천 년 동안 우리 곁에서 변함없이 흘러준 한강에게 바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개와 고양이, 한강에게 상을 바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제 식구자랑 좀 그만하자. 팔불출 같다.

<고려대 평생교육원 교수 김 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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