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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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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행복
  • 경도신문
  • 승인 2016.01.17 1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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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게 출근해 밤늦게야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나는 동네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다.

나는 응암동에서 장사도 하고 노동도 하고, 포장마차도 하며 거의 안 해본 거 없이 살았다.

그때 사귄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되면 너무나 반가워 서로가 오랫동안 손을 잡으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얼마 전 조금 늑장을 부리며 출근을 하려다가 대문간에 버려진 폐지를 줍고 있는 청년과 어머니를 만났다.

오래전부터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모자였다.

나는 반가워 “그간 안녕하셨어요. 아주머니! 요즘 파지 값이 얼마에요?”라고 그렇게 인사를 하는데 옆에서 청년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아저씨가 리어카 줬어!”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청년은 조금 지능이 낮은 청년이었는데 벌써 10년이 훨씬 넘은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서천수라는 한 건달이 살았다.

그는 이혼을 하고 아이와 함께 건설현장에서 야방을 보며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건설현장에 불이 나서 그만 아이가 불에 타 죽고 말았다.

그 이후로 그는 건달이 됐다.

나도 그때 사업을 여러 번 실패해 길에서 노점을 하며 어묵과 튀김을 팔고 있을 때였다.

우리 아이를 ‘장군’이라 부르면서 장난감을 사주고 특별히 예쁘게 생각해주던 그였다.

나는 그에게 함께 살아보자며 좋은 이야기를 해주면서 리어카 한 대를 사주었다.

그는 건달, 부랑아 생활을 마감하고 파지를 주우며 열심히 살고 있었다.

어느 해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떡국 한 그릇 먹이고 싶어서 그가 살고 있는 쪽방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불을 넣지 않은 방에서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가 그만 얼어 죽고 말았던 것이다.

경찰에 신고하고 그의 장례를 주관해줬다.

옷가지 등 그의 유품을 정리하고 나니 리어카 한 대가 남았다.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두 모자가 유모차에 파지를 주어 싣고 가고 있었다.

그때 그 리어카를 이 청년에게 선물했던 것이다.

가끔 그 청년이 어머니와 함께 파지를 줍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지만 차마 기억이나 할까?

공치사하는 것 같아서 아는 체를 안 했었는데, 그 먼 기억을 떠올리게 해준 청년에게 감사한다.

보잘 것 없는 선물이 모자(母子)에게는 가장 큰 사업밑천이 됐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사무실로 여러 단체에서 기부를 해달라고 전화가 온다.

장애인들이 만든 물건이니 비누나, 차 등을 팔아달라거나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이 굶고 있으니 월 1,2만원씩 도와달라는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통화가 연결된 지 벌써 수년이 지났다.

나는 한방차를 사거나 비누를 사기도 하고 약간의 기부를 하기도 한다.

지난 연말에도 충무로에서 책 인쇄를 맡기고 돌아오는 길이면 자주 구세군 자선냄비를 만났다.
그때마다 나는 거의 그냥 지나친 적이 없다.

보잘 것 없는 액수지만 도움의 손길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떡 장사 아주머니가 떡을 이려고 다라를 만지면 번쩍 들어서 머리에 이게 도와드리고, 노인들의 팔을 부축해서 계단을 함께 오르며, 길을 모르는 외국사람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것이 내 출퇴근의 즐거움이다.

포천이 고향인 나는 시골에 갔다 돌아오는 날이면 호박이며 깻잎, 콩 등을 가져와 이웃들과 나눈다.

나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것이 꼭 많은 돈일 필요는 없다.

마음이 먼저 선행돼야 한다.

새로운 1년이 우리에게 선물로 다가왔다.


창조주는 해마다 우리에게 1년을 선물하는데 우리는 그 선물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며 너무나 하찮게 여기며 소비했다.

사람은 나눌 때 가장 행복하다.

사랑은 먼저 베푸는 사람에게 더욱 크게 느껴진다. 홍콩의 배우 성룡은 전 재산 4,000억 원을 사회에 내 놓으며 “내 아들이 똑똑하면 그 재산이 필요 없을 것이고, 무능하면 그 재산을 모두 탕진할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한 푼 남기지 않고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 라고 말해서 세인들의 가슴을 울린 적이 있다.

어차피 한 푼 가지고 가지 못하는 인생이라면 이웃과 함께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고려대 평생교육원 교수 김 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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