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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깁기식 전시회,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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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깁기식 전시회, 이제 그만
  • 경도신문
  • 승인 2016.01.31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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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피카소에서 프란시스 베이컨까지’라는 전시회에 다녀왔다.

예술의전당 측에서 발간한 전시회 카탈로그에 따르면 “서양미술 거장 20인의 작품세계에 집중하다”라는 교묘한 문구로 관람객들을 현혹시킨다.

그 문구를 자칫 잘못 읽으면  “서양미술 거장 20인의 작품세계를 집중 조명하다”라고 읽혀진다.

사실 나 또한 그 문구를 잘못 읽고 해석해서 서양미술 거장 20명의 작품세계를 만나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전시회에 갔었다.

그러나 전시회는 실망 그 자체였다.

완전 짜깁기식 전시회, 재탕 중탕 전시회, 그리고 졸작 습작 전시회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최 측에 홍보유인물에 따르면 파블루 피카소의 작품 24점, 마르크 샤갈의 작품 9점,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 15점, 앤디 워홀의 작품 10점 등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20여명의 거장들의 작품을 집중 조명해 그 작품세계를 심도 있게 보여줄 것이라 홍보하고 있지만 빛 좋은 개살구다.

우선 피카소의 어떤 작품이 전시돼 있는지 살펴본다면 피카소의 판화작품 ‘소’의 판화기법에 관한 것을 순서대로 10여점 이상 늘어놓고 있어 24작품이라 해봐야 고작 몇 편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마르크 샤갈의 작품은 펜화 위주의 소품들이 대부분이고, 앤디 워홀 작품 또한 다른 전시회나 버스정류장의 광고물로 나왔던 마릴린 먼로의 얼굴을 변형시킨 작품을 10여점 늘어놓아 보는 이의 실망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마르셀 뒤샹이나 앙리 드 틀르즈 로즈텍의 그림은 차라리 습작이거나 만화에 가깝다.

만화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을 거장의 작품이라고 떠벌여 손님들을 끌어 모으려는 주최 측의 상술에 신물이 올라오는 것이다.

앤디워홀의 작품은 석파정이 있는 서울미술관에 갔을 때 보았던 작품이다.

어떤 화가의 작품은 고작 몇 편을 끼워팔기식으로 집어넣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주최측은 거장 20명의 작품 100여점을 볼 수 있는 전시회라고 떠벌이지만 석판화 순서 전시, 마를린먼로 변형 그림 전시 등을 제외하고 이리저리 해봐도 겨우 명화 몇 점 만날 수 있는 정도였다.

나는 글을 쓰는 작가다. 따라서 결코 습작은 세상에 내놓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작가들 같으면 휴지통에나 구겨 넣었을 것 같은 작품들을 번듯하게 걸어놓고 손님을 받는 것을 보면 정말 짜증이 난다.

게다가 조명은 어찌 그리 어두운지 작품 설명을 볼 수조차 없게 해 놓았다.

게다가 외국인을 위한 배려는 전혀 없다.

외국인으로 보이는 관람객이 여러 명 눈에 뜨였는데 제목 외에 외국어로 된 설명이 없어 작품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하는 것을 볼 때 부끄러워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영어설명은 물론이고 중국어나 일본어까지 설명돼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출신국의 신분을 물어서 손님을 받지 않는 것이 옳다.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손님을 받는다는 것은 싸구려장사꾼의 행태로 나라의 이미지를 떨어뜨린다. 우리나라에서 으뜸으로 손꼽히는 예술의전당,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술의전당의 한가람미술관 전시회가 그래서야 되겠는가?

베네수엘라 국립미술관재단 컬렉션전이라는 캐치플레이즈를 내걸었는데 이 역시 왜 그런 문구를 내걸었는지 설명이 있어야 한다.

사실을 의심받지 않으려면 정확한 설명으로 문화소비자에게 다가가 설명해주어야 마땅하다.

이제 우리나라는 더 이상 빈곤국이 아니다.

이제 먹고 즐기는 문화를 넘어서 보고 체험하는 문화가 된 지 오래다.

문화소비자들은 이런 관람문화를 통해서 재창출의 문화로 탈바꿈하려는 것이다.

국민들의 예술에 대한 욕구는 점점 더 고급화되고 다양화 돼가고 있다.

따라서 작품의 격을 따지지 않고 물량공세로 전시장을 억지로 채워 관람객을 받아서는 안 된다.

모처럼 한국을 여행하다가 피카소나 샤갈의 작품을 만나고 싶은 외국인도 있고, 자국의 화가 작품들이 전시돼 반가워 들르는 외국인들도 있다.

방학을 통해 지방에서 올라오는 학생들이나 교육자들도 있다.

전시기획 담당자들에게 부탁하노니 실망주지 않는 전시회를 기획해주었으면 좋겠다.

<고려대 평생교육원 교수 김 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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