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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교와 미술(美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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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교와 미술(美術)
  • 경도신문
  • 승인 2015.07.1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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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교(Lama敎)는 티베트불교의 일반적인 호칭이다.

몽고·네팔·시킴·부탄 등지에도 전파됐다.

사자상승(師資相承)을 중히 여기고 종교상의 스승인 라마(lama)에 절대 귀의한다.

여기서 라마란 ‘생명의 근원을 주는 자’의 뜻이다.

사자상승은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학예를 이어 전함을 말한다.

촌카파의 제자에서 비롯된 달라이 라마(Dalai Lama), 판첸 라마(Panchen Lama:라마교의 부교주)는 활불(活佛)로서 유명하다.

7세기 중엽에 처음으로 티베트에 불교가 전해졌고, 8세기 말에는 인도로부터 대승불교(大乘佛敎)의 밀교가 전해졌다.

9세기 중엽에는 배불(排佛)로 잠시 쇠퇴됐다가 10세기 말에 다시 일어났다.

11세기 인도에서 들어온 아티샤는 흩어진 교계를 지도해 현밀(顯密) 양교를 융합했다.

현밀은 뚜렷함과 은밀함을 뜻하는데, 불교에서는 현교(顯敎)와 밀교(密敎)를 지칭한다.

그 후 한때 쇠퇴했으나 14세기에 촌카파가 개혁파를 일으킨 뒤, 17세기에 들어와서 달라이 라마정권이 수립됨으로써 절대 우위를 차지하게 됐다.

개혁파는 게룩파(爭行派)로 불리며, 구파인 홍모파(紅帽派)에 대해 황모파(黃帽派)로도 불린다.

전생활불제(轉生活佛制)는 라마교의 특색이다.

생불(生佛)이란 살아 있는 부처라는 뜻으로, 썩 높은 중, 활불(活佛)이다.
여기서는 라마교의 수장(首長)이다.

라마묘(Lama廟)는 라마교의 사원이다.

티베트의 건축양식인 평지붕 건물을 연이어 지은 것이 많다.

중국, 청조에서는 라마교를 보호했으므로 중국의 북부지방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라마교의 미술(美術)과 관련해서는 건축부문에서 라마교는 원래 중인도의 퇴폐적 불교 전통이 티베트에 들어가 이루어진 티베트의 불교였다.

즉 라마교(Lama敎)가 중국에서 발전하게 된 까닭은 원(元)시대(1271~1368)에 원이 티베트에 대한 융화책으로서 라마교를 국교로 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원시대의 중국건축은 다소간 라마교 건축양식의 영향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라마교의 건축양식은 중인도 양식이 티베트화한 것이 그 특색이다.

라마탑의 기원도 중인도 건축양식에서 온 것이지만 원시 대에 처음 중국에 건립됐다.

이러한 유적으로는 허베이 성(河北省), 북평성내(北平城內), 묘응사(妙應寺)의 백탑(白塔)과 북평성외 삼하고 백탑(北平城外三河橋白塔)등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원 시대에 들어온 라마교 건축양식은 그 후 명(明:1368~1644)과 청(淸 :1616~1912)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건축의 전통을 여실히 지배했다.

조각과 회화에 관해서는, 7세기 초에 처음 불교가 티베트에 전해졌을 때 당(唐)과 네팔(Nepal)로부터 석가 화상이 함께 전해졌었다.

그 후 13세기경까지 인도의 후기 대승불교(大乘佛敎:Mahayanist Buddhism)가 이식됐다.

그간 인도의 불교미술이 함께 도입돼 그 땅에 이식됐음은 물론이다.

현재 남아있는 라마교의 불화나 불상들은 17~18세기 이후의 작품들뿐이다.

라마교의 불화와 불상들은 대체로 보수적이어서 괄목할만한 발전이 없었다.

그 이유는 문화의 수준이 낮은 탓으로 인도와 중국에 대한 경외와 존경에 시종하고 굴종해 이를 변혁할 능력이 없었다.

더군다나 불교적인 신앙심이 규범을 엄수하는데 너무나 신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라마교의 회화조각은 일관해 테마의 변화가 전혀 없다.

연대의 결정이 대단히 혼란스럽고 어렵다.

불상으로서는 석가상외에 제여래상(諸如來像)이 많다.

이밖에 밀교적(密敎的)성격으로 인한 다수의 인도교신과 토착신의 신상이 그려졌다.

이러한 그림은 주로 호부(護符:amulet·부적)로 사용됐기 때문에 신상들의 표정이 무겁게 그려져 있는 것이 많다.

이러한 그림들의 제작방법은 처음 비단이나 무명 또는 가죽 외에 아교(阿膠:갖풀)와 백묵을 혼합해 입힌 후 조개껍질로 갈아내서 길을 들인다.

그것이 만들어지면 원형(原形)의 그림을 보고 세밀한 윤곽 묘사를 한 다음 채색을 했다. 채색으로는 금·홍·청·록 등의 빛깔 배합이 화려하다.

이러한 불화(佛畵)는 화공에 의해 장인적인 단계를 거쳐 제작됐다.

다만 조사상(祖師像)에는 명·청 이후, 중국의 산수화 수법이 도입돼 훨씬 장식적이고 분망(奔忙)하며 자유로운 것이 있다.

라마교(Lama敎)와 라마 탑(塔)을 사전에서는 각각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7세기에 인도에서 티베트에 전해진 대승불교가 티베트의 교유 신앙과 동화되어 발달한 종교. 뒤에 네팔·부탄·만주 등지에 전파됨. 18파 중 홍모파(紅帽派)와 황모파(黃帽派)가 가장 큰 세력을 가졌는데, 15세기 이후 후자가 주유를 이루어 달라이 라마가 종파를 통솔해 왔음. 나마교’

‘중국 원(元)나라 때 티베트에서 전해온 라마교가 창안해 낸 형식의 불탑. 인도의 수투파와 비슷해 밑에서부터 방형(方形)의 대석, 높은 복발(伏鉢), 원추형의 상륜(相輪), 원개(圓蓋)를 쌓아 올렸음’

나 경 수
(사) 전자·정보인 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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