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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의 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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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의 부침
  • 경도신문
  • 승인 2015.10.25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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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淸溪)는 청간(淸澗), 맑고 깨끗한 시내를 말한다. 청계천(淸溪川)은 서울의 종로구와 중구(中區)의 경계를 동서로 흐르는 개천이다.

길이 3,670m, 전에는 수표교, 오간수료, 광교, 영미교, 관수교가 있었으나, 1958년~60년의 복개공사로 없어졌다.

그때는 광교에서 마장동까지 자동차전용도로인 삼일고가 도로가 가설돼 있었다.

우리나라의 근대사가 굴곡과 수난이 많았지만 청계천만큼 파란만장한 하천도 없을 것이다.

서울의 한 복판의 종로구와 중구의 경계를 관통해서 흐르는 총길이 10.84km가 되고 유역면적 59.83km2인 청계천의 본래의 명칭은 개천(開川)이었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당시에는 자연적인 실개천이었다.

그때에는 오수(汚水)와 쓰레기로 인해서 지저분하다 못해 불결했고, 홍수가 나면 여지없이 물난리였다.

그 후 태종 때에는 청계천에 치수사업을 벌였고 영조 때는 20만 명을 동원해 바닥을 파내는 준설작업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유로(流路)변경공사를 시행해서 물의 흐름을 조정해 직선화했다.

뭐니 뭐니 해도 청계천을 크게 변모시킨 것은 일제 강점기에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대대적인 지명 정리 작업을 하면서 개천을 청계천이란 새로운 명칭으로 바꾸고, 하천에 멘 것을 파내고 바닥에 쌓인 모래나 암석을 파냈다. 이렇게 대대적인 준설공사를 했다.

하지만 생활하수가 청계천을 거쳐 그대로 한강으로 흘러 들어갔고, 이러한 가운데 분뇨와 토사가 계속 자꾸 쌓여서 하천 바닥이 점점 높아졌다.

그래서 일제는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1937년에 무교동 일대를 구조물로 하천을 덮어씌우는 소위 복개공사를 단행했다.

그러다 8.15 해방 후에는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과 피난민들이 벌떼같이 청계천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에 문제가 붉어지자 서울시는 청계천 일대에 전면 복개할 것을 결정하고 드디어 1958년에는 공사에 착수했다.

장장 종로 2가에서 동대문에 이르는 청계천을 철근콘크리트로 덮어서 큰 도로를 만들었다.

 4년 3개월 만에 준공이 끝난 이 도로의 총 연장길이는 2,358미터, 너비는 16~54미터에 이르렀다.

이렇게 청계천의 더러운 물이 가려져서 서울시의 미관은 물론 시민의 위생과 보건에 도움이 되고 동시에 그 지긋지긋한 교통난을 크게 완화하게 됐다.

1976년 자동차 전용도로인 청계고가 도로가 개통됐다. 뒤이어 이듬해 청계천 전면 복개공사가 마무리됐다.

이로써 하천으로서 청계천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듯 했다.

그러나 25년이나 넘게 콘크리트 밑에서 잠자고 있던 청계천의 복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논의 선상에 올랐다.

마침 2002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불이 붙게 된 것이다. 청계고가도로의 안전문제도 있거니와 거리의 미화차원에서도 하루빨리 청계천을 복원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새로 당선된 시장이 들어서면서 청계천의 복원사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주변 상인들의 끈질긴 집단 반발이 있었고 청계천 복개구조물 아래에서 발견된 문화유적의 처리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하지만 2005년 10월 드디어 대단원의 청계천 복원사업은 마무리됐다.

복원사업의 10년을 맞은 오늘날 청계천은 외국인 방문객을 포함해서 월평균 총 150만이 넘는 내국인이 방문해서 도심 속의 오아시스와 같은 쉼터를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항상 ‘빛과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다.

물줄기가 없는 마른 하천이었던 청계천에 인공으로 한강물을 끌어다 쓰는 현상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만 연간 물경 18억 원에 달한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콘크리트에 둘러싸인 일종의 어항이란 비판 섞인 논란이 끊이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폭우가 쏟아지거나 비만 조금 심하게 오면 방문객들이 고립돼 발이 묶이곤 한다.

또 물고기가 수시로 폐사돼 주위가 꼴불견이 되곤 했다.

서울 청계천이 복원된 지 10년 동안 여섯 번이나 물고기 집단폐사가 발생했다.

복원 이듬해인 2006년 6월8일 처음으로 어류집단 폐사가 발생했고 그 이후에도 금년 8월까지 도합 여섯 번의 집단폐사가 발생해서 2,000여 마리의 물고기가 죽었다.

물고기 폐사가 발생하는 것은 15분당 3mm이상 비가 내릴 때 청계천으로 향하는 수문이 자동적으로 개방되는데 이때 오염물질이 함께 유입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물고기 집단 폐사가 발생했을 때의 청계천의 강수량은 3.5~7mm 정도였다고 한다.

청계천변이 옛 모습을 되찾았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생태계가 복원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인공하천이라는 한계를 드러내 돈으로 만들고 사람의 힘으로 끌고 가는 인공하천이라는 오명은 아직도 뒤에 따라다닌다.

청계천의 천변카페와 산책로 확장은 물론 차제에 1960년대에 만들어져 우리나라 경제의 큰 축이었던 전자산업의 산파역이었고 요람인 세운전자상가의 부활도 함께, 연구, 강구되기를 기대한다.

나 경 수
(사) 전자정보인 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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