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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 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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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 의 향기
  • 경도신문
  • 승인 2015.11.1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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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은 중국 전한시대의 역사가인데, 자는 자장, 태사공으로도 존칭됐다.

생년은 B.C.145년과 B.C.135년의 두 가지 설이 있으나, 몰년은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그의 생애는 대체로 한 무제의 치세당시로 시종된다고 생각된다.

그는 하양협서성한성현 출신으로 태사령조정의 기록이나 천문담당이란 관직에 있던 사마담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후에 무릉서안시북서으로 적을 옮겼다.

어려서부터 고문으로 쓴 전적을 즐겨 읽고 배웠으며, 또 전국을 수시로 주유하면서 사적을 찾아다녀 연구해 이에 대한 견문을 넓혔다. B.C.110년에 부친인 사마담은 무제가 태산에서 거행한 봉선의식에 참석이 허용되지 않았음을 한으로 여겨 고뇌 끝에 분사다.

임종 시에 고대부터 당시까지의 역사를 저작하라는 유언을 사마천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다. 여기서 봉선이란 흙을 봉해 단을 모으고 하늘과 산천에 제사 지내는 일이다.

B.C.108년에 부친의 뒤를 이어 태사령이 된 사마천은 먼저 역의 개정에 종사해 B.C.104년에 태초력을 완성하자마자 부친의 유언을 따라 통사의 편찬에 착수했다.
 
그런데 B.C.99년에 한나라 장군 이릉이 흉노에게 패해 포로가 되는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었다.

 이 이릉의 처분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일가몰살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를 차지했으나 사마천만은 이릉의 충절과 무용을 칭찬하면서 극구변호를 했기 때문에 무제의 분노를 사서 궁형생식기를 없애는 형벌에 처해졌다.

수년 후, 출옥해 중서령의 관직에 복귀하고 이제까지의 정신적 타격에도 굴하지 않고 전심전력을 다해 통사 저작에 경주했다.

드디어 사기를 완성했는데 이를 저술한 직접적인 동기는 부친의 유명을 충실히 받든데 있다.

부친의 분사와 집필하는 도상에서 이릉의 화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됐다.

하지만 사실의 정확한 검토를 통해서 인간의 종합적 가치를 결정했고, 인과관계의 불합리성을 하늘을 대신해 수정함으로써 역사학이 갖는 오묘하고 특별한 의미를 터득하고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로 인해 사기 중에서도 특히 열전부분이 특히 이채를 띄고 있으며, ‘사기’와 함께 사마천의 이름을 불후의 것으로 기록한 것이다.

당시 그의 심정과 역사에 대한 정열은 우인임안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충분히 알아 볼 수 있다.

사기는 중국사람 사마천이 편찬한 사전이다. 사전적 의미로 사기는 역사적인 사실을 적어놓은 즉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사서·사승·사적·사책이라고도 한다.

또 사전은 사적역사와 전기 또는 역사에 전해진 기록을 의미한다. 130권의 이와 같은 방대한 ‘사기’는 본래 태사공서라고 했으며 위진 이후에는 ‘사기’라 불렀다.

정사 또는 기전체의 사서의 원조로서 위로는 황제부터 아래로는 한 무제의 원수 원년(B.C.122년)에 이르기까지의 전반적인 사건이 12본기, 10표, 8서, 30세가, 70열전의 130편으로 세밀하게 나누어 방대하게 기술되고 있다.

태사는 옛날 중국에서 기록을 맡아 보든 관리이고, 공서는 공문서로 공무원이 그 직무상 작성한 서류로 공식 서면을 말한다.


또 정사는 정확한 사실의 역사라는 뜻으로, 기전체에 의한 중국 역대의 역사로, 비사와 대칭이 된다. 비밀히 감추어 둔 역사가 비사인데, 세상에 알려지지 아니한 이면사를 말한다. 기전은 본기와 열전, 어떠한 사람의 전기를 적은 기록이다.

또 기전의 체재에 의해 기술하는 역사 편찬의 한 체재가 기전체이다.  본기는 제왕의 흥망을 적었고, 표는 세계연표, 서는 예악제도, 세가는 춘추전국의 제후 및 한의 왕족과 공신으로서 왕후로 봉해진 사람들의 일, 열전은 그 밖의 중요한 인물을 자객·순리규칙을 잘 지키며 열심히 일하는 관리·유림·혹리·유협협객·영행·골계·일자·구책·화식재화를 늘림 등으로 분류해 적었다.

사마천은 이 책을 쓰면서 모든 고금의 문헌을 샅샅이 뒤졌다.

기록에 있는 것 이외에도, 자기의 견문에 의해 확실하다고 믿는 것을 대담하게 잡아넣어 각 인물을 생생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자료는 옛날 것 일수록 적고, 현대에 가까울수록 많고, 또 예와 지금과의 기술형식에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략 시대가 내려옴에 따라 묘사된 인물의 리얼하고 더욱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사마천의 사기에서 정수를 뽑은 책이 사기영선이다.

조선조 정조20년(1796)에 출판했다.

1권에 항우본기와 소상국유후등의 세가, 2권에 백이·관중·안영·오자서·소진·맹상군 평원군 등의 전, 3권은 신릉군·범휴·악의 등의 전, 4권은 회음후·육가 등의 전, 5권은 위기 후·무안후·관부·이 장군 및 자객·유협 등의 구성돼 있다.

이어 6권 화식전 및 태사공자서, 7권은 소무·이능·흉노·곽광 하우 등의 전. 8권에는 위·병길·조충국·매복 등의 전으로 세세하게 기술돼 있다. 전이란 중국에 있어서 경의 주석, 또는 해설을 말한다.

서경에 공안국이 붙인 주석을 공전이라 하며, 모장의 시경의 주를 모전이라 한다.

원래 전은 전기, 한 개인의 일평생의 사적을 말한다. 또는 역경에 붙어 있는 단전 상전이하의 즉 십익 춘추에 붙었던 좌씨전 공양전 곡량전의 삼전 등은 간단한 자구의 해석이 아니다.

전자는 ‘역’의 특수한 상징의 의미의 해설로서 철학적 이론이며, 후자는 독특한 역사 기술법 ‘춘추의 필법’에 따라 쓰여 진‘춘추’에 대한 그 이면의 사실을 예를 들어 거기에 해설을 붙인 것이다.


나 경 수
(사) 전자정보인 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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